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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교육철학   크리스천을 위한 기독교신앙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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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상진  |  출판사 : 도서출판 그리심
발행일 : 2021-03-10  |  (160*230)mm 592p  |  978-89-5799-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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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독교신앙교육에서 철학이 필요할까?

우리 모두가 기독교교육에 헌신한다고 해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기독교교육에 대한 견해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여러 가지 신학적인 견해와 교육적인 견해를 가진 기독교교육 사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기독교신앙교육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자신들의 견해를 한번 비교해보기를 원한다. 이 책은 기독교신앙교육의 여러 주제에 대한 필자의 관점과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개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마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분을 제공할 것이다.

제1부에서는 신학과 철학의 물음과 기독교교육의 역사적인 발단에서 철학에 대한 필자의 이해와 기독교교육철학을 다루었다. 이것을 통해 기독교교육에서 철학적으로 흥미 있는 주제와 문제들에 대한 명확하고 사려 깊은 논의를 전개했다.

2부에서는 볼르노의 인간이해에 따른 교육에 대해 논의하였다. 볼르노는 인간을 종교와 연관하여 합목적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그리고 종교과학적인 측면에서 창조 신앙적이고 측량할 수 없는 존재로 접근하였다.

3부에서는 기독교 신앙교육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페스탈로찌의 교육 사상을 다루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과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졌지만 안타깝게도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고 있는 정신적 빈곤과 허탈감은 더 심화되어 우리의 행복지수는 예전보다 더 어려운 수치에 도달하고 있다.


[서문]

학문적 작업에 있어 그 전제가 무엇인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세계의 근원에 대한 헬라적인 학문의 전제이자 희랍 창조철학과도 연관성을 갖는 전제이다. 무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창조신앙의 개념은 기독교교육철학의 특성을 우리 교육 체계에 정착시키는 동인이기도 하다. 창조 법칙의 개념은 일반교육에서 기본적인 개념은 아니더라도 신앙인에게는 기본적인 개념이다. 창조 신앙은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 속에서 창조자인 하나님이 역사적인 창조 질서를 이끌어 가시는 동시에 아름다운 우주 법칙의 질서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창조 개념을 변호하면서 학문에 적용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 타락 구속 성화 교육>에서 삶의 근원자를 발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루시고자 하시는 기독신앙교육의 교사 및 사명자로서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교육에 대한 신성한 명령이 있는 창조에서 인간의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 기독교적인 인간교육은 매우 가치가 있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기독교교육에 헌신한다고 해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기독교교육에 대한 견해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여러 가지 신학적인 견해와 교육적인 견해를 가진 기독교교육 사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기독교신앙교육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자신들의 견해를 한번 비교해보기를 원한다. 이 책은 기독교신앙교육의 여러 주제에 대한 필자의 관점과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개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마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왜 기독교 신앙교육에서 철학이 필요할까? 본서의 제1부에서는 신학과 철학의 물음과 기독교교육의 역사적인 발단에서 철학에 대한 필자의 이해와 기독교교육철학을 다룰 것이다. 이것을 통해 기독교교육에서 철학적으로 흥미 있는 주제와 문제들에 대한 명확하고 사려 깊은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동시에 이 책은 기독교교육의 이해를 위한 여러 가지 논점들을 살펴 보았다. 이러한 논점은 기독교교육 철학과 이론을 위한 연구 자료들을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신학자, 교육철학자, 종교철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연구를 통해 기독교신앙교육에 대한 새로운 빛을 밝힘으로써 이 책은 철학과 신학이 서로 대화하는 또 하나의 공간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신학과 철학 사이의 협력과 갈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기독교 신학이 명백한 철학적 사고, 분석 그리고 표현의 기반을 제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항상 자신의 낯선 협력자에 대해 잠정적이고 정당화할만한 요소를 찾지 못했다. 또한 신학이 자기인식을 위해, 혹은 더 체계적이게 되기 위해 철학을 수용했던 모든 시대에서, 신학교육은 철학적 반성의 길을 서서히 개방시켜 왔다. 동시에 교회의 모든 역사의 과정은 철학을 통해 사람의 지혜와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 사이의 갈등의 존재를 드러내는 철학의 도전에 대한 반응이 있어왔다. 하지만, 가장 체계화된 신학의 교육과 교리들, 철학적 태도에 의해 만연한 반응들은 적어도 이러한 필요를 일깨워 주는 것 외의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우리는 인간 역사를 잃어버렸고, 엄밀한 과학의 사용에 대해 논쟁한 많은 신학자들은 논리적 학문이 20세기 동안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토의와 논쟁은 때때로 갈등했고, 연합의 결실도 있었다.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철학에서 찾아내는 데는 한계성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철학에 의해 발전된 논리적인 부분을 기독교 안에서 토의하는데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았다. 현재 기독교교육신학은 새로운 교육철학을 창조하지는 않지만 철학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교육신학은 철학을 통해 기독교적인 내용들을 논리적이고 지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1부에서는 신학과 철학의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요소들을 파악하고 신학과 철학의 관계 속에서 두 학문의 조화 가능성을 분야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기독교교육의 역사적 발단을 청교도적인 장로교회의 역사를 통해 접근하였고, 기독교교육의 핵심은 성경과 더불어 교회신앙교육의 기준 틀을 만들고 동시에 교회의 신앙 교육은 신학적 기초 위에서 실시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기독교교육의 목적에도 기본 전제가 있다. 이 전제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죄성을 해결해 주시고 변화시키시는 근원자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2부에서는 볼르노의 인간이해에 따른 교육에 대해 논의하였다. 볼르노는 인간을 종교와 연관하여 합목적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그리고 종교과학적인 측면에서 창조 신앙적이고 측량할 수 없는 존재로 접근하였다. 2차대전 이후 볼르노는 독일 교육학에서 인간학과 교육학의 관계성을 새롭게 다루는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는 미래 지향성을 가진 개방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볼르노의 인간 삶의 철학적 구상은 종교 과학을 위한 의지에 영향력을 적합하게 연결해 주는 요소다. 그러므로 볼르노의 철학적인 인식과 이중적인 진리의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또한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필자에게 인식과 진리 문제에 대한 볼르노의 숙려(熟慮)들은 종교적 문제와 관련되는 종교 과학적인 방법 논의에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종교와 관련하여 현재에 무게 중심을 볼르노의 삶의 철학적 해석을 따르면서 그의 근본 사상들을 새롭게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현실적인 삶의 철학과 종교적 해석은 서로 배제하기 보다는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볼르노의 해석학 연구를 통하여 얻게 된 것이다. 삶의 철학과 종교의 복잡한 관계를 해명하는 시도 외에 볼르노의 <대화사상>을 고찰하였다. 볼르노의 해석학적 구상은 오늘 날의 다양한 학문과 종교들, 문화들 간에 존재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삶 속에서 듣고, 말하는 이중적 능력을 전제하는 대화의 준비는 신뢰와 함께 여러 패러다임들을 포괄하는 진리의 문제들이 발생하는 공간에 도움이 된다.
3부에서는 기독교 신앙교육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스위스 교육철학자 페스탈로찌의 교육 사상을 다루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위주의 경제 정책과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졌지만, 안따깝게도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고 있는 정신적 빈곤과 허탈감은 더 심화되어 우리의 행복지수는 예전보다 더욱 더 어려운 수치에 도달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는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 대안으로서 인성교육과 신앙교육의 강화 및 확대라는 처방을 내놓았다. 이러한 심각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학교와 사회, 교회, 종교계는 연합하여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교육은 교육이 필요한 인간의 본성과 조건, 배움의 방법적 원리들과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에 기초한다. 특별히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기독교 신앙교육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발달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즉, 기독교교육은 선과 악의 이중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진심으로 대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전수된 신앙에 대한 이해와 삶의 실천을 도와줌으로 과거를 회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신학적 철학적 교육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를 통하여 도출해 낸 인간성 교육이 기독교 신앙교육에서 중요한 교육적 요소가 된다.
신앙적인 인성교육이란 원만한 인성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탁월한 도덕적 성품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특성에 맞는 삶의 양식과 행동 방식을 지속적이며 일관되게 취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성 교육은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39절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교훈하고 경계한 목적이 바로 양심이라고 하였던 말씀과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서 인성교육이 실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회상하면서 칼빈과 루터의 신앙교육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시도하였다. 라인홀드 헤트케는 칼빈의 교회를 통한 교육을 <하나님의 교육>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교회 직분자들에게 도구적 행위를 통하여 가르치고, 지도하며, 통치하고, 권면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육>으로서 칼빈과 루터의 신앙교육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필자는 페스탈로찌 200주년 기념회를 회고하면서 그의 교회 교육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회고해 보았다. 페스탈로찌가 우리 사회에 주는 하나의 통찰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기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불합리한 한계성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의 결함을 변호하면서 정당화하지 말고 담대하게 현실을 즉시하며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것에 자신을 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신의 한계성을 재인식하고, 구속의 근원자를 향한 사명자로서 인간에 대한 교육을 신앙적으로 계몽하면서 사회, 국가, 학교, 교회에 대한 그 시대의 교육적 사유를 새로운 이해의 지평으로 확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였다. 학문적인 이론과 실천에 관하여 교육철학, 기독교교육 세계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사회현장에 대하여 유용한 조언을 주신 뒤셀도르프 대학의 Paul Rainald Merkert 교수님과 본 저서가 나오기 까지 도움을 주신 총신대학교 여러 교수님들과 여러 제자들 그리고 신앙의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원당교회 유선모 목사님, 예수인 교회 민찬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기도로 인내하며 기다려준 세 아들, 시원, 승희, 평희 그리고 언제나 나의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준 사랑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아내, 성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늘의 아픈 시대 정신 속에서
나 자신의 본질적인 삶을 회상하여 본다면
신앙과 삶의 갈등이며,
사고하는 가장 멋진 행복과 기쁨은
탐구 가능한 것을 탐구하고,
탐구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내려놓고,
기도하며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가는
빈자(貧者)의 본질과 비본질을 추구하는 삶이다.>

총신대학교 사당동 골짜기에서
2021년 3월
完山 韓相振
1. 철학과 신학의 갈등

기독교와 철학 사이의 협력과 갈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기독교 신학이 명백한 철학적 사고, 분석 그리고 표현의 기반을 제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항상 자신의 낯선 협력자에 대해 잠정적이고 정당화할만한 불신을 숨겨왔다. 이러한 부조화 속에서 신학이 자기인식을 위해, 혹은 더 체계적이기 위해 철학을 수용했던 모든 시대에서, 신학은 철학적 반성의 길에 갈등하며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교회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철학을 통해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사이의 갈등의 존재를 드러내는 철학적 논쟁에 대한 반발도 있어왔다. 하지만, 체계화된 신학적 교리들과 철학적 태도에 의해 만연된 부조화는 적어도 반발자들의 필요를 일부분 일깨워 주었다. 논리적인 과학과 신학과의 논쟁은 때때로 결실이 있었고 때때로 불운했던 연합의 역사도 있었다.2)
실제로, 이런 연합만큼이나 갈등은 기독교가 철학과의 관계성 속에서 확장하는 시대적 상황 안에 내재되는 동인이었다. 비록,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 철학의 전체를 분명히 나타내지도, 가능한 철학적 생각의 모든 형식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는 그리스 철학과의 만남 없이 확장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종교와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 철학의 고유한 논리적 요구를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교부들이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였을 때, 이것으로 인해 교회의 갈등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초대 교회는 자신의 모든 철학과의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은 채 세례에 의해 새롭게 된 변화된 인간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피조물로 감춰진 철학적 인간은 서서히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신앙 안의 오래된 철학 혹은 형식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불안은 정당화 되었고 이것은 교부 신학자들과 철학자의 글 안에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P. de Labriolle는 이교도들의 철학적 지혜가 교회에 들어 올 때 그것에 대한 교부들의 저항을 꽤 정확하게 파악했다.3) 그들은 교회가 이교도 철인들을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였다. 그는 논리적인 철학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만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떠오를 수 있었고, 4세기 말에는 오직 기독교 학문만을 위해 예비된 수단으로 전통 문화와 특정 철학을 남긴 온건한 교리는 결국 멈추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모든 신앙의 고백 속에서 기독교의 사상들은 타협의 분위기 속에 존재해왔다. 영웅시대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위의 합의를 진압하는 것을 시도했고 철학의 반대와 거부 위에 종교 개혁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개혁 후에, 그러니까 사도 시대의 직후에 기독교 신학이 매혹적인 철학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처럼, 타협의 길로 다시 빠지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이 명백하게 잘못한 타협의 형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체면을 지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신앙의 수단은 교회의 권위에 의해 정의되며, 반드시 그 틀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신학과의 상호 적용의 과정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노스의 철학에 의해 주어지게 된다.4) 연합의 수단을 인정하며, 수많은 해답이 가능할지라도, 합의 조건은 기독교와 철학의 상호인정의 정확한 정의를 통해 발전될 수 있다. 이러한 합의의 역사는 분명히 흥미롭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역사를 쓰는 목적이 아닐까?
이러한 방식의 합의가 도출되는 궁극적인 지점을 생각해보자. 왜 한 가지에서 시작해야만 하는가? 만약 신앙의 부족으로 인해, 하나가 분명한 실체에 닿는 것은 성공하는 어떤 기본적인 틀이 부족한 채로 신학과 지식을 상정한다면 어떨까? 철학자들이 초기 교회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신앙인으로부터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따르면 오리겐과 모든 영지주의의 공통된 기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오는 분명한 추정과 이런 종류의 믿음보다 더 완벽한 직관의 정도이며, 헬레니즘의 사색적 철학에서는 직접적인 지식의 재발견이 되었을 것이다.
중세시대의 이 합의는 매우 다른 개념으로 그것은 단지 믿음의 교리를 드러내는 논리적 용어의 철학만을 요구했거나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학을 하나의 원칙으로만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철학의 역할이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더라도, 강요된 믿음에 의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신학의 미션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백이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철학적 틀 안에서만 믿을 만해지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타협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철학의 존재를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구속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가능성을 지닌다.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그리고 철학의 실제에 의해 나타난다. - 신앙 안에서의 좋은 생각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분명한 형식은 시작점이 된다. 이는 더 이상 변경할 수 없는 결정(decision)이나 주의(-ism)가 아니라 모래 위의, 그러니깐 지지기반이 약한 분석일 뿐이다. 또한 가능한 두 분석은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가 통합적으로 두 가능성을 모두 강조할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삶의 자동적 칸막이와 같은 것으로 선교적 믿음과 충돌한다. 동시에, 기독교가 그 스스로 철학의 존재 내에서 발견될 때, 존중할만하지만 그래도 기독교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철학과 신앙에 분리가 이루어졌다 해도 경험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계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모호한 위계의 많은 개념을 믿기 위해, 이것에 대한 조사 없이는 만족할 수 없다. -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라는 인식은 기독교인들의 의식에 매혹되어 중세후기 신학계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우리의 시작에서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철학이 종속이 되거나 신학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철학의 하위는 쉽게 발생하며 철학의 본래적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철학의 실제와 철학적 반성에 제한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이러한 제한된 철학의 반성은 정당화된다. 이 문제에 대한 옳은 접근은 철학 자체가 가진 힘과 기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모호한 하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하나의 예이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서 신학의 자리는 추정될 수 없다. 이는 단지 믿음의 진실을 확증하기 위해 제안될 뿐이다. 이것은 신학적 논쟁을 거부하며 신앙의 진실만을 확증한다. 이것은 철학 때문에 신학자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애써 성경으로부터 논제를 도출하는데 이는 그의 형이상학적 토대가 기독교 신앙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보이려고 한 것이었다. 철학과 신학의 위계는 유지되었지만 철학의 자율성을 제한 할 수는 없었다.
데카르트는 어떤 계시의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자연적 빛과 초자연적 빛을 급진적으로 분리하였고, 난공불락의 철학적 이성과 이성의 자율을 선포하고, 이성에 의한 형이상학 탐구를 가능하게 했다. 신학과 철학 사이의 갈등 없이 어떻게 이 위계가 유지되었는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 영혼의 불멸성 등과 같이 이성과 계시가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문제를 상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왜 신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철학적 증거들을 애써 사용해야만 했을까? 데카르트는 수학으로 이것을 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었던 것일까? 신앙이 더 나은 확신을 주장하고, 신학이 이 힘없는 증거를 선포했을 때, 하나님의 살아있음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위계가 존재하지만 이성의 자율이 존중 될 때 신앙의 확신을 확신할 수 없으며 영생의 논쟁을 방지할 수 없게 된다. 철학의 신학 종속 가능성에 대한 판단 없이 이 두 요소에 의한 신앙의 훈육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철학과 신학의 위계를 생각하게 했다. 이러한 사고 속에 기독교인은 새로운 믿음을 허용할 수 없었고, 다만 조화 속에서 믿음은 다양하며 또한 역사적으로 믿음과 교리는 관련 없다는 태도를 가지게 한다. 믿음은 어떤 존재의 전적인 거듭남의 전제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으로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일으킴을 받는다. 이러한 영적 변화는 철학이 제시하듯이 믿는 사람은 오직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함의한다.

어떤 철학적 태도도 기독교적 동기 없이, 즉 신앙의 열정 없이, 신앙 속에서 발견될 수 없었고 또한 신앙 안에 받아들여 질 수도 없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철학 또는 철학적 태도가 기독교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기독교는 이러한 철학적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와 위배되는 철학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다. 존경 받는 신학의 특별한 역할은 문제가 있는 철학을 변혁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 교리와 공존 가능하거나 수용 가능한 철학의 진실 또는 타당한 철학의 태도도 허락하지 않았다. Heinrich Barth의 표현에 따르면 철학은 - 물음에 대한 가치있는 대답- (fragewurdig)이 되어야만 한다.5)
사실, 이것은 철학의 자율성을 위한 기초로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자유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우리가 믿음의 기초로 수용할 만하고 모든 것이 안식하는 순간부터만 존재한다. 아무도 이미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또 다른 기초를 둘 수 없다. 아무도 그 위에 어떤 다른 기초를 세우리라 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철학일지라도 말이다. 참으로, 철학은 기독교교리와의 특정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토대 위에 명백하게 서야만 한다. 다양한 철학들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은 두 번째로 역사적 문제이다. 이러한 연구로부터 독단적이지 않은 표준적인 진실이 나온다. 실제 핵심에 대한 철학의 기본적인 태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 이질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Callmann이 보여준 연구에 따르면 기독교의 믿음은 참되고 명확한 의미를 일으킨다. 단순하게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신앙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육체를 입고 오셨으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그는 고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지상 명령을 선포하신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들은 이 기초와 연관되어있으며, 창조세계와 역사 모두, 주와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은 <하나>의 기초와 연관될 때 받아들일 만 하다는 것과 앞서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결심해야 한다.
철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내용 안에 삽입하거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모든 창조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안에서 지어졌다. 피조물의 열망과 기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가져온 구원을 향한다. 그러나 아직은 직접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이야기하거나 그를 선포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그를 향해 이끌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예술이나 윤리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의미나 기초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훈련의 주요한 주제로서 그를 포함시키거나 그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정직한 행동, 유혹에 대한 저항을 예수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도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철학의 자발성을 포기하는 것은 <철학적 심사숙고>와 <예수그리스도의 강림 죽음 부활 승천과 그로인한 왕국> 사이의 기초적인 관계를 찾는 것이다.
만일 이런 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된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성의 유지를 위해서 철학의 영역은 자발적이면서도 스스로 이론이 된다. 여기에는 인식의 두 가지 다른 영역, 서로 이질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신앙과 이성이다. 실제로 이 상반된 용어는 철학과 이론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 되어 왔다. 실제로 이러한 시도는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이성의 거리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지도되어왔다. 신앙은 합리적일 때 신앙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인 것이 보편적인 개념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성은 믿음과 완전히 관계가 없지는 않다. 그것의 뿌리는 스스로 또는 실재의 출현을 향해서, 신앙의 행위로 구성된 참된 과정 안에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의 변명의 가장 진부한 생각을 인지한다. 그것은 인식의 두 영역은 함께 더 또는 덜 가까워질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라. 신앙과 이성이 가장 상반된 것은 이 두 실재가 이미 성공적으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적어도 인식의 일반적인 형태로 같은 곳에 새겨진 통합된 한 개념 아래에 포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기에 이것은 정확히 인식론을 손상시키는 기본적인 오류, 더 특별하게 종교적인 지식의 이론에 속해있다는 것에 있다. 신앙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실재가 이분법적으로 함께 가져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교리는 신앙을 심리적 질서의 실재로 간주하는 것을 금지한다. 신앙은 단순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은 인간이 획득한 지식 속에서 오는 것이다. 은혜는 창조세계에 어떤 것도 더하지 않는다. 단지 창조세계를 보충하는 장식품일 뿐이다. 은혜는 창조세계를 회복시키고 변혁시킨다. 심리적 레벨 속에서 이것은 증명된다. 불충분한 분석과 종교의 경험적 해석은 우리로 하여금 신성한 은혜가 새로운 감각과 감정의 새로운 방법과 믿음을 구성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의 재개(再開)는 심리학적으로 명백하다. 산발적이거나 영속적인, 실재이거가 분명한, 주된 것이나 부수적인, 심리학적이지 않은 결정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 안에서 주체에 의한 사유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존재에 대한 주제의 개입은 참된 인간 존재로 이끌어 주는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신앙은 항상 심리학적 명시 뒤에 놓여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리학적 관점으로부터 온 태도와 제스쳐를 미신이라고 여기고 신앙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 여인은 그의 핑계를 위해서 그에게 다가가서 그를 붙잡았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믿음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 여인의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만으로 이러한 결과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믿음의 존재는 확실히 주제의 실재를 가정한다. 또한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더 좋은 피조물이 심리학적인 자기 안에서 소모되지도 않는 것은 유동적인 의식의 통합 때문이다. 자아의 기능은 자신의 의식 안에서 제한되지만, 심리학적인 자기로 돌아간다.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고 적당히 철학의 언어로 성격을 기술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어렵다. 치명적으로, 이는 항상 심리학적인 카테고리의 의미로써 이해될 것이다. 또는 심리학적인 경험이나 Cogito(나는 생각한다)를 통해서 이해될 것이다. 이 주체는 물질의 조건이나 우연의 조건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본질의 조건이다. 참된 주체는 존재를 불러일으키신 창조자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창조물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생각일지라도 본성에 따라서 이해될 수 없으신 주체이시다. 인간들은 자신들을 항상 생각하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체의 행동과 상황을 창조하고, 회복하고 되찾는다. 신앙은 주체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상징적 의미이다. 이것은 사람에 의해 공헌된 교리가 아니며, 종교적 태도에 의한 것도 아니고 효과적인 감정과 경험에 의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직 신앙의 문제 안에서 교리를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요인은 있을 법한 목록들로 구성된다. 믿음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결심이며, 성경을 읽는 사람이 순종으로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마 28:19; 요 13:34; 빌 2:8; 롬 1:5; 히 11:8). 이성적인 변호나 감정적인 찬미와 별개로 우리의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순종이다. 믿음은 충분히, 심리적인 자기결정의 행동과 정확히 상반되는 고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신앙의 고백은 영혼이 그 스스로 하나님의 주권에 - 예- 라고 대답할 때 일어난다.

만약 믿음이 단지 인간의 의식 형태 중 하나라면 인간의 삶과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심리적인 상태처럼, 정신 상태의 접촉을 통해 특정 영역을 밝히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 고백의 참된 의미 있는 개념을 잃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언어에 의한 상징 또는 과장된 표현이 되며 언어의 기묘한 특성은 믿음과 존재의 대리인이 되어 신앙의 충만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나치게 자신을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론적 상황으로써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의심 없이 그리고 적합하게 다양한 심리적 기능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믿음은 그 스스로 이성을 관통하고 변혁시키고 영향을 끼친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 마음을 새롭게 할 것- 을 언급하고, 믿음의 지식을 알린다. 여기에는 신앙과 이성의 동일성의 실재의 반대편에, 믿음에 대항하지 않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이성이 있다.
서문·4

1부 기독교교육에서 신학과 철학의 만남

1장 철학과 신학의 대화 가능성·15
2장 하나님과 기독교철학·39
3장 선험적 한계성과 기독교철학·62
4장 키에르케고르의 현대 철학의 발단·85
5장 인간의 정체성과 개혁주의 사회철학·105
6장 기독교교육의 역사적 발단·138
7장 기독교교육의 전통과 영향·169

2부 볼르노와 교육인간학

1장 삶의 철학과 기독교교육·195
2장 인간학에서 본 종교와 교육·217
3장 형식 논리학적 전환에 있어 로고스 개념에 대한 볼르노의 사상·244
4장 할 수 있음 교육학에 대한 인간학적 물음·269
5장 종교과학에 대한 볼르노의 새로운 해석학적 고찰·299
6장 인간 삶의 진리 문제·325

3부 인성교육과 신앙교육

1장 인성에 대한 교육적 의미·359
2장 교회교육을 위한 인성교육의 중요성·384
3장 마틴 루터와 마틴 부처의 디아코니아·408
4장 칼빈의 신앙과 교회교육의 중요성·450
5장 칼빈의 교회교육과 교리·475
6장 페스탈로찌의 삶과 신앙교육·506
7장 기독교 신앙과 양심교육·538

참고문헌·568
색인·587
한상진
· 총신대학교 종교교육과 졸업 (B.A.)
·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M.Ed.)
· 총신대학원 기독교 교육학과 이수
· 독일 부퍼탈 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이수
·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 철학부 교육학과 졸업, 철학 박사(Ph.D.)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Equiv)
·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 교환교수 역임
· 한국복음주의기독교교육학회장 역임
· 현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부교수
· 현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연구소장

주요저서
· Die Paedagogische Anthropologie O.F. Bollnows Und Ihre Reaptionsgeshichte in Korea-Zenon Verlag
· 인간학적 교육학(역) - 양서원
· 해석학과 정신과학적 교육학 공저 - (주)사회평론
· 위대한 교육사상가들Ⅵ - 교육과학사
· 종교개혁자의 신앙교육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 기독교 인간교육 - 그리심

주요논문
· Die unstetigen Erziehungsformen in der Paedagogoscheperspekeiv
· Die Rezeption von Bollnows Erziehungsgedanke in Korea
· 새 시대의 기독교 인간교육
· 인간성 교육에 대한 기독교교육의 과제
· 개혁주의 기독교교육학의 과제
· 도예베르트의 인간교육철학
· Bollnow의 해석학과 종교학의 관계성 고찰
·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나타난 칼빈주의 교육
·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인간교육에 관한 고찰
· 삶의 철학과 교육의 관계성 고찰
· 루터의 인간이해에 대한 철학적 사고
· 계몽의 지평에서 칸트의 교육사상
· 잊혀져 가는 페스탈로찌의 삶과 종교와 교육
· 포스트모던의 역사와 신학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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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기독교 신앙교육철학
저자한상진
출판사도서출판 그리심
크기(160*230)mm
쪽수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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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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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한상진) 신간 메일링   출판사(도서출판 그리심)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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