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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헐버트 내한 130주년 기념 헐버트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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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헐버트/김동진  |  출판사 : 참좋은친구
발행일 : 2016-07-05  |  (152*225)mm 557p  |  978-89-964166-1-6
  • 판매가 : 32,000원28,800원 (10.0%, 3,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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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로의 시간여행/한국학의 개척자 헐버트의 한민족 뿌리 탐구
헐버트의 지성과 정의, 인간애, 실용의 가치관을 만나다
한민족이라면 꼭 알아야 할 민족적 자긍심이 담긴 인문, 역사, 교양서


헐버트(Homer B. Hulbert), 조선 자신도 모르는 조선의 혼을 깨우다
- 외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풍속 및 풍광을 최초로 해외 언론에 소개
- 한민족의 말글, 문학, 예술, 풍속, 종교 등 조선 최초의 한민족 뿌리 탐구
- 숨겨진 역사 발굴, 헐버트 중국에 한자 대신 한글을 쓰도록 제안
-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헐버트의 빼어난 탐구 정신과 감동의 통찰력을 만나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 저술, 최초의 한글에 관한 학술 논문 발표, 최초로 아리랑 채보 등)
-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경시한 서양인들의 인식에 또 다른 서양인의 반기
- 조선도 몰랐던 한민족의 우수성이 서양인에 의해 품위 있게 그려지다


책의 발간 목적
- 그동안 묻혀 있던 헐버트의 한민족 탐구에 대한 글들을 세상에 알려 헐버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 헐버트의 한민족 뿌리 탐구를 통해 한민족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국민 모두가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 안중근 의사의 증언처럼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며, 대한민국 역사에서 ‘건국공로훈장’과 ‘금관문화훈장’ 두 훈장을 받은 유일한 역사 인물인 헐버트의 공적을 우리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책의 역사적 의미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가 되기 위해 1886년 조선 땅을 밟은 헐버트는 조선 최초의 교사요 고종의 대미특사(1905)이자 헤이그특사(1907)인 독립운동가이며, 한글 운동가요 어문학자요 역사학자요 언론인이요 선교사이다. 그는 특히근대 최초로 한민족의 말글, 문학, 예술,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한 한국학의 개척자이며, 정의, 인간애, 실용의 가치관으로 조선의 지식층에게 근대사상을 고취시켜 신학문과 근대화에 큰 울림을 준 문명화의 선구자이다. 헐버트는 한민족과 관련하여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 등 7권의 단행본, 4권의 소설, 4편의 희곡, 3권의 자서전, 그리고 200여 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겼다. 특히 헐버트는 순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탄생하기 5년 전인 189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하여 조선인들의 한글 무시를 성토하고, 한글 전용을 주창하였다. 또한, 그는 15년의 집념어린 연구로 우리나라 최초 의 종합 역사서 ≪한국사≫를 저술하는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 인간의 역량이 무한함을 보 여 준 경이로운 저술가였다.

이번에 출간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는, 단행본을 제외한 200여 편의 논문 및 기고문 중 헐버트가 조선시대(1886년부터 대한제국이 탄생한 1897년 10월까지)에 쓴 57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담았다. 57편 중 30편은 한국에서 발행되던 영문 월간지 ≪한국 소식(The Korean Repository)≫과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실린 글이다. 이 30편의 글의 존재는 일부 학자들에게 알려졌으나 번역본이 없다 보니 이 글들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지 못했다. 57편 중 나머지 27편은 헐버트가 해외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로서 이 책을 통해 원문과 번역본이 모두 최초로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다. 이 책은 또 57편 외 에 헐버트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머리말을 옮긴이의 해설과 함께 담았다. ≪사민필지≫는 단행본이지만 한글 역사에 너무 소중한 책이기에 이 책에서 특별히 소개하였다.
30여 년간 국제 금융기관에서 활동한 옮긴이는 130년 전 영어와 씨름하며 헐버트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번역에 임하였으며, 난해한 문장이나 원문의 오류를 각주에 풀이하였다. 옮긴이는 200여 편 중 나머지 150여 편의 논문 및 기고문도 곧 번역하여 출판할 예정이다.

이 책의 역사적 의미,
- 그동안 묻혀 있던 한민족 뿌리 탐구에 대한 역사 발굴
- 헐버트의 한민족의 우월한 문화적 정체성 발견은 민족적 자긍심 고취에 기여
- 헐버트의 한민족에 대한 국제적 소개는 조선 최초의 언론 외교 활동
- 헐버트의 사상적 배경과 한국 사랑의 원천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기여

책의 내용
1. 조선을 해외 언론에 최초로 소개(1886~7)/조선 최초의 언론 외교관
- 특파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풍속과 서울의 풍광에 대해 미국, 영국 신문에 기고(13편)
- 조선의 콜레라 공포를 소개하고, 각국에 조선의 근대화 노력을 도울 것을 호소
- 조선에 대한 중국의 횡포를 고발
- 조선, 미국에 군사교관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미국 거절(1886)
2. 한민족의 말글을 역사상 최초로 학술적으로 탐구(20편)
- 한글에 관한 근대적 의미의 최초의 학술 논문인 <한글(Korean Alphabet)>(1892) 등에서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한글 창제자 세종의 위대성을 설파
- 한국어의 우수성을 논리적으로 풀이, 한국어가 대중 연설어로서 영어보다 우수하다고 결론
- 한국어를 우랄알타이 어족의 아시아 남부 언어인 드라비다 어, 태평양상의 에파테 어, 대만 토착어 등과 직접 비교하며 한국어의 기원을 추적
- 한민족의 기원을 한국어의 연원을 통해 분석, 삼한(마한, 진한, 변한)인들의 남방계설 주장
- 한국어 로마자 표기를 연구하여 오늘날 로마자 표기법의 근간을 제시
- 이두의 변천을 분석하여 신라어가 오늘날의 한국어임을 증명
- ≪훈민정음≫을 학술적으로 분석하여, 세종이 백성의 고통을 덜어준 성군이라고 역사상 최초로 국제 사회에 소개
- 한글 맞춤법을 보완하자며 불필요한 아래아(ㆍ) 등을 없애자고 주장
- 한글, 금속활자, 거북선 등 한민족의 세계적 발명품을 최초로 세계 언론에 소개하며 한민족의 우수성을 설파.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 특사들의 독립 공고사를 <헤이그만국 평화회의보>에 실어 우리나라를 도왔던 영국 언론인 스테드(Willim T. Stead)와 헐버트의 관계 새롭게 조명
- 한글로 교육하여야만 반상을 타파하고 한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
- 중국과 일본도 한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
3. 조선의 문학, 예술을 고찰하고 조선의 속담을 소개
- 단군신화 등 조선의 설화를 국제설화학술회의에서 역사상 최초로 국제 사회에 소개
- 조선의 속담 123개를 해설을 붙여 한글 및 영문으로 발표, 한민족의 정서를 고찰
-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채보하고, 조선인들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주장
- 조선인들은 시적 감각이 뛰어나며, 자연을 가장 잘 즐길 줄 아는 민족
- 판소리(광대의 이야기 풀기)는 독특한 소설의 장르로서 예술성에서 서양의 소설 능가
4. 갑오개혁의 내용을 풀이하고 조선의 풍수지리를 소개
- 갑오개혁 조항을 일일이 분석하고 이의 실천을 통해 행복한 농민, 정직한 관료, 지성과 근면을 갖춘 중산층의 결실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 또한, 종교의 자유를 포함할 것을 주장
- ‘서울’이 ‘서라벌’에서 왔다고 주장
- 조선의 묏자리에는 ‘청룡백호’도 있어야 하지만 ‘규봉(窺峰)’은 꼭 피해야 한다고 기술
- 국호 ‘朝鮮’이 ‘潮仙’에서 변화했을 개연성 시사. 그러나 ‘아침 햇살’의 의미에서 왔다고 결론
5. 기독교인의 자세를 정의하고 가톨릭교의 조선 선교 역사 소개
- 조선은 기독교에 적합한 나라이니 조선 선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
- 선교사의 길과 자세를 엄정하게 제시. 선교사는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야망을 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
- 피로 얼룩진 가톨릭교의 조선 선교사를 정리하며 가장 소설 같은 이야기로 규정.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 간의 불편한 관계로 병인박해 발생 시사
6. 일본 여행기 미국 신문에 기고(1887년)
- 조선 남부 여행은 불안하다는 권고에 따라 일본을 여행
- 1887년에 있었던 세기의 개기일식을 일본에서 관측, 과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신문에 기고
7. 헐버트의 업적, 저서 목록, 우리나라 개화사 연표 상세하게 소개

숨겨진 역사 발굴
- 헐버트, 중국에 3만 개의 한자 대신 한글을 바탕으로 한 38개의 소리글자 체계 제안
헐버트가 중국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글자 체계를 1913년 전후에 제안하여 중국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는 사실이 미국 신문에 의해 보도되었다. 이를 보도한 신문은 당시 헐버트가 살고 있던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 시에서 발행되던 《리퍼블리컨(The Republican)지로 추정된다. 옮긴이가 헐버트의 손자(Bruce W. Hulbert)로부터 입수한 신문 기사 스크랩에는 신문의 이름과 발행 일자가 없었다. 신문 발행일자는 중화민국 건국에 대한 문맥으로 보아 1913년경으로 추정된다. 기사를 보면 중국 정부가 헐버트의 제안에 긍정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문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헐버트가 위안스카이에게 이 안을 직접 제안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 와있던 위안스 카이(袁世凱)가 1913년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되고, 헐버트는 위안스카이와 같은 시기에 조선 에서 살았기에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위안스카이는 대총 통이 된 뒤 ‘조선의 한글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서 글자를 깨우치게 하자’라고 제안하였다는 주장도 있다(≪신동아》2012년 1월호 기고문 ‘한글 세계화 열전’, 곽경). 한편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발행되던 잡지 ≪태평양≫ 1913년 11월호 논설에서 ‘지금 청국에서 수입하여 청인(淸人)들이 이 국문을 이용하도록 만들려 하는 중이니 국문의 정묘(精妙)함이 이렇습니다.’라고 밝혔다(건국대통령이승만기념사업회 인터넷 통신문 2014년 4월 11일 자 ‘대통령의 말씀 6회’). 이승만이 글을 쓴 연도가 헐버트의 신문 기고 추정일과 일치한다. 여러정황으로 보아 당시 중국이 한글 또는 한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자 체계의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헐버트는 평소 조선이 한자를 쓰는 것보다 오히려 중국이 한자 대신 한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헐버트가 중국에 제안한 새로운 문자가 한글을 어떻게 변형시켜 만든 문자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헐버트가 중국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 글자를 제안하였다는 사실은 한글이 한반도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있었던 일로 한글 세계화의 첫 걸음이었으며, 헐버트가 한글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문자라고 확신하였다는 또 다른 증빙이다.
- 일본도 한글을 공식문자로 사용할 것을 주장
헐버트는 ≪헐버트 문서≫라는 자전적 회고록(컬럼비아대학교 원본 소장, 표지 소실, 1930년 전후 저술 추정)에서 한글을 200개가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보았지만 한글 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한글은 배운지 4일이면 한글로 쓰인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도 한글을 공식문자를 채택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글의 문맥으로 보아 그는 다른 글이나 연설에서도 일본이 한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임
-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 특사들을 도운 영국 언론인 스테드(Willim T. Stead) 와 헐버트의 관계 새롭게 조명.
이상설, 이준, 이위종, 헐버트 특사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제 2차 만국평화회의 참가를 위해 고군분투할 때 독립 공고사를 <헤이그만국평화회의보>에 실어 우리나라를 도왔던 영국 언 론인 스테드(Willim T. Stead)가 어떤 연유로 한국 특사들을 도왔는지가 그동안 분명치 않았 으나 헐버트와의 인연으로 스테드가 한국을 도왔을 개연성 확인. 스테드는 헐버트가 1899년에 미국의 유수한 잡지에 기고한 <한국의 세계적 발명품(Korean Inventions)>을 자신이 런던에서 발행하던 지에 소개함으로써 스테드가 헐버트를 통해 한국이 훌륭한 문 화 유산을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개연성을 보여 주었다(1899). 독립 공고 사를 실을 당시 헐버트와 스테드의 교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전에 두 사람이 접촉하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테드가 1912년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사망한 사실도 밝 혔다.
- 조선, 미국에 군사 교관 파견해달라고 요청
헐버트는 1886년 미국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이 미국에 군사 교관 파견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미국이 거절하여 서울에 사는 미국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증언. 만약 그때부터 미국이 조선에 군사적으로 협력했더라면 조선은 나라를 일본에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 국제설화학술회의에서 조선의 설화를 최초로 국제 사회에 소개
헐버트는 미국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여 1893년에 개최한 시 카고세계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 기간에 열린 ‘컬럼비아국제설화학술회의 (The International Folk-Lore Congress of World’s Columbian Exposition)’에 참가하 여 7월 13일 첫 번째 연사로 단군신화 등 조선 설화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때 헐버트는 1891년 말 조선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Ohio) 주에 살고 있었다. 이는 헐버트가 미국에 살면 서도 한민족 탐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음을 말해 준다. 주최 측은 학술회의가 끝난 뒤 원고 를 책으로 남겼으며,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이 원고를 확보하였다. 이 발표는 조선 설화에 대 한 최초의 국제적 소개이다. 1893년 시카고세계박람회에는 조선도 참가하여 조선의 문화를 국제적으로 소개하였다. 헐버트가 조선의 박람회 참가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저술 특징
- 특이한 역사적 사건이나 난해한 문장을 각주에 풀이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움
- 헐버트가 기고한 신문이나 잡지에 대한 기초 정보 제공
- 영문 원문의 서술적 오류나 철자 오류를 지적하여 원문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도움
- 한자와 외래어를 가급적 피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옮김
- 각 논문의 핵심 문장을 영문 원문과 함께 논문 머리에 실어 논문의 중심 의미를 강조
- 조선 속담 123개에 영문 원문을 담아, 영어 공부에도 도움

헐버트 주요 어록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어문학자인 헐버트는 한글 암흑기에 한글 전용의 지평을 열고, 조선 자 신도 모르는 조선의 혼을 깨우고, 조선의 미래를 예언하였다.
모든 나라는 조선의 근대화 노력을 지원하고 조선인들을 격려해 줘야 한다. 특히 기독교 국 가들이 앞장서서 조선을 도와야 한다.(1886, 조선에 대한 첫 글에서)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해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 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 하리오.(1891, <사민필지 머리말>)
세종의 한글 창제 목적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세종 은 백성의 임금이었다.(1892, <한글>)
만약 한민족이 한글 창제 직후부터 자신들의 새로운 소리글자 체계인 한글을 받아들였더 라면 한민족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물을 고치는데 너무 늦었다 는 법은 없다.(1896, <한글>)
영국인들이 라틴 어를 버린 것처럼 조선인들도 결국 한자를 버릴 것이다.(1896, <한국 소식 통신란>)
한국어는 대중 연설 언어로서 영어보다 우수하다.(1902, <한국어>)
훈민정음에 배열한 글자들은 음성학의 법칙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따랐다.(1903, <훈민정음>)
맞춤법을 배우는 일은 조금 더 힘들지만, 맞춤법을 통해 더해지는 시각적 요소는 문장 자체를 더 풍부하게 하면서 그림의 색깔과 같은 역할을 한다.(1904, <한글 맞춤법 개정>)
분명한 사실은 조선인들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1904, <한국 교육 은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사이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하고 또 유일한 방법은, 평민들 에게 훌륭한 한글 문학을 선사함으로써 한자 시대를 뒤집어 진정한 교육이란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있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일이다.(1904, <한국 교육은 혁명적 변화가 필요 하다!>)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관성에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1905, <한국사 세종 편>)
세종은 그리스에 문자를 전한 페니키아 왕자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1905, <한 국사 세종 편>)
거의 모든 조선 속담은 평범한 삶에 대한 언급을 통해 고차원적인 진리를 드러내며, 속담 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저 그런 것이 아닌 현저하게 실용적임을 보여 준다.(1895, <조선의 속담>)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음식에서 쌀과 같은 존재이다.(1896, <조선의 성악>)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시인이 된다.(1896, <조선의 성악>)
아리랑은 한민족의 영원한 노래가 될 것이다.(1896, <조선의 성악>)
조선의 시는 자연 음악이며, 단순하고 간결하고, 열정, 감성, 감정이 전부다.(1896, <조선 의 시>)
어느 민족도 봄의 풋풋함을 조선인들보다 더 만끽하지 못한다. 어느 민족도 조선인들만큼 언덕 위에 앉아 아지랑이에 반쯤 가려진 환상적인 가을 풍경을 열정적으로 즐기지 못한 다.(1897, <조선의 예술>)
광대의 숙련된 동작과 음조가 소설을 읽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연극적 요소를 더해 주기 에, 광대의 이야기 풀기(판소리)’는 예술성에서 서양의 소설을 훨씬 능가한다.(1902, <조선의 소설>)
천 년이 흘렀거늘 일본은 아직도 보상의 법칙을 입증하지 않고 있다.(1895, <갑오개혁>) 개혁의안에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는 조항을 포함하여 갑오개혁 안이 한민족을 위한 최상 의 개혁안이 되기를 희망한다.(1895, <갑오개혁>)
조선에서도 언젠가 종교가 융성하리라 확신한다.(1887, <조선 선교를 위한 호소>)
해외 선교지로 떠나는 젊은이들은 세상에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야망을 품어서는 안 된 다.(1890, <선교 기술>)
1부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원형극장
1886년 조선에 당도하여 해외 신문에 조선을 소개한 기고문(13편)

2부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조선의 말글, 발명, 교육과 관련한 논문 및 기사(20편)

3부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시인이 된다!
조선의 문학, 예술, 민담에 관한 논문 및 발표문(6편)

4부 일본은 천년의 빚을 갚아라!
조선의 역사, 사회, 풍속에 관한 논문 및 기사(8편)

5부 조선에서도 언젠가 종교가 융성하리라 확신한다!
종교에 관한 논문 및 기사(6편)

6부 세기의 개기일식을 보다!
1887년 일본 여행기 신문 기고문(4편)
“헐버트 박사는 동사가 황홀할 정도로 발달한 한국어는 영어보다 우수하며,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중 최고의 문자이며, 조선인들이 한글을 업신여기는 것을 통탄하였으며, 훈민정음에 배열한 글자들 이 음성학의 법칙을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따랐음을 밝혀내고, 한글 맞춤법과 한국어 로마 자 표기법의 기초 연구를 통해 후학들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완성하는 데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헐버트 박사가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한글 암흑기에 한자를 버리고 한글 전용을 주창한 헐버트 박사의 한국 말글에 대한 업적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한글학회 이사장 김종택-

“조선의 소소한 관습에서도 한민족의 강점을 발견한 헐버트 선교사의 학문적 소양에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헐버트 선교사를 알면 알수록 그의 한국 사랑에 고개가 숙여지고, 그가 기독교인이자 감 리교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을 많은 국민들이 읽어 한민족의 혼과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기독교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참 크리스천입니다. 이 책은 목회자나 선교사를 꿈 꾸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통해 올바른 기독교관을 확립하는 계기를 만들기 바랍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전용재-
헐버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Homer B. Hulbert)
1949년 7월 1일 86세의 한 서양 노인이 미국 워싱턴의 주미한국대사관을 나섰다. AP통신 기자가 노인에게 한국을 방문하는 소회를 물었다.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라고 답했다. 노인은 한국 땅을 다시 밟는다는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일제의 박해로 한국을 떠난 지 40년 만이 아닌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물리학자 뉴턴(Sir Isaac Newton), 대문호 디킨스(Charles Dickens) 등이 묻힌 유서 깊은 곳이다. 이 노인이 누구이기에 이렇게 진한 한국 사랑을 고백하였을까? 그 노인이 바로 23세에 조선 땅을 밞아 평생을 한민족과 기쁨과 슬픔을 공유한 헐버트(Homer B. Hulbert)이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1949년 광복절 행사에 참석해 달라며 국빈으로 초청받은 것이다. 헐버트는 남부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 26일 미국 동북부 버몬트(Vermont) 주에서 대학총장이자 목사였던 아버지와 다트머스(Dartmouth)대학 설립자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 1여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헐버트는 ‘원칙이 승리보다 중요하다(Character is morefundamental than victory)’라는 가훈 속에서 성장하였다. 헐버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재학 중,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員)’의 교사가 되기 위해 1886년 7월 5일 조선 땅을 밟았다. 헐버트의 한국 사랑은 드라마보다 짙다. 그는 한국의 역사, 문화에 매료되어 한민족의 진수를 한국인보다 짙게 음미하였다. 그는 ‘교육만이 살길이다’라는 신념 아래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또 한글을 통한 교육 확장만이 한민족의 문명화를 이룰 수 있다며 한글 사용을 외롭게 외쳐댔다. 헐버트는 일제의 침략주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 고종 황제의 밀사로, 민권운동가로 일본과 맞서 싸우며 정의, 평화, 인간애, 올바른 애국심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헐버트는 한 달여의 여정에 지쳐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세상을 떴다. 그는 광복절 경축식 단상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한강변 양화진에 묻혔다. 그리도 사랑하던 한국의 분단을 슬퍼하며 오늘도 그의 눈물이 한강으로 방울방울 흘러들고 있을지 모른다. 외국인인 헐버트의 한국 사랑에서 우리는 우리를 무엇을 배워야 할까. 헐버트는 한국 사랑에 의무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 그의 한국 사랑의 의미를 더 넓고 더 깊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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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저자헐버트
출판사참좋은친구
크기(152*225)mm
쪽수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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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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